두 가지 시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역대상 15:28
시선이 인생을 결정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두 가지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인간이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 중 83%가 시각 정보입니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전체 뇌 용량의 30% 이상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한 실험을 해볼까요?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세요.
이제 바닥을 내려다보세요. 같은 공간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죠?
이것이 바로 시선의 힘입니다. 시선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각 정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스마트폰 확인 횟수는 150회 이상이고,
하루 평균 스크린 시청 시간은 7시간 이상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받는 시각 정보는 하루 3,000개 이상의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시각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양의 시각 정보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로 보는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인스타그램에서는 남들의 완벽해 보이는 순간들을 봅니다.
유튜브에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썸네일들을 봅니다.
뉴스에서는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을 봅니다.
취업 사이트에서는 끝없는 경쟁과 스펙 비교를 봅니다.
뇌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 뇌의 신경 회로를 만든다."
즉, 우리가 계속 부정적인 것을 보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뇌가 만들어지고,
비교하는 것을 보면 비교하는 뇌가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을 아시나요?
우리 뇌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보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실패에 집중하면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족함에 집중하면 감사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비교에 집중하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놓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희망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시선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비 오는 날을 보며 "우울하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비를 보며 "공기가 맑아져서 좋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뇌의 가소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보려고 노력하면, 뇌의 신경 회로가 실제로 바뀝니다.
성경은 이미 2000년 전에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라고 마태복음 6장 22절에서 2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우리 전체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현대 뇌과학이 증명한 것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루 종일 무엇을 보며 살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현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시선, 인간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이 두 시선의 차이를 발견하고, 우리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시선이 바뀌면 뇌가 바뀌고, 뇌가 바뀌면 인생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의 노예가 된 인간
오늘 본문 역대상 15장을 보면 흥미로운 대조가 나타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려고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처음에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13절에서 다윗이 고백하기를 "지난번에는 여러분이 메지 않았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규례대로 하지 않았기 그렇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바로 "보이는 것에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언약궤를 옮길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보이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집중했습니다.
"수레에 싣고 가면 되지 않을까? 다른 민족들도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가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원칙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편리한 방법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웃사가 죽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한 결과였죠.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모습 아닌가요?
첫째, 즉각적인 것에만 반응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둘째, 표면적인 것만 판단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어려움만 보고, 상황의 깊은 의미는 놓치며, 하나님의 계획은 보지 못합니다.
셋째, 감정적으로만 대응합니다.
논리적 사고보다는 감정적 반응을 하고, 두려움, 불안, 절망이 판단을 지배하며,
믿음보다는 느낌을 우선시합니다.
취업 준비생들은 떨어진 면접 결과나 남들의 합격 소식 같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때와 계획, 성장의 과정은 놓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월급, 승진, 동료와의 비교 같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일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섬김의 기회는 놓치고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서는 외모, 스펙, 경제력 같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인격, 신앙, 하나님이 합하신 관계는 놓치고 있습니다.
경제적 상황에서는 통장 잔고, 부채, 남들의 소유 같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이나 진정한 풍요로움은 놓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받는 정보의 83%가 시각 정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각 정보가 가장 즉각적이고 강렬하다는 것입니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시각 정보는 0.13초 만에 뇌에서 처리됩니다.
반면 논리적 사고는 몇 초에서 몇 분이 걸립니다.
결국 보이는 것이 생각하는 것을 압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는 것에 매몰되는" 현상의 과학적 근거입니다.
성경은 이미 이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이는 것"을 넘어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보이는 것의 노예가 되었을까요?
첫째, 창조 목적의 왜곡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시각을 주신 원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물을 감상하고 경배하기 위해서였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였으며,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조화롭게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하나님보다 피조물에 집중하게 되었고,
다스림이 아닌 소유욕으로 변질되었으며, 영적 시각의 상실로 물질만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생존 본능의 과잉 작동입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뇌는 여전히 원시시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즉각적인 위험을 빠르게 감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고,
"지금 당장 보이는 것"이 생사를 결정했으며, 장기적 사고보다 즉각적 반응이 우선이었습니다.
현대적 문제는 실제 생존 위협은 거의 없어졌지만
뇌는 여전히 모든 것을 "위험"으로 인식하여, 취업, 연애, 경제 문제를 생존 위기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죄의 본질인 하나님 대신 피조물 숭배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에서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복음의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 보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배고픔을 느끼셨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으셨으며, 십자가에서 극한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이는 고통에 매몰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의 메커니즘은
하나님(보이지 않는 분)보다 세상(보이는 것)을 신뢰하고,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며,
창조주의 뜻보다 피조물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넷째,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광고로 "보이는 것"으로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문화는 소유한 것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며,
경쟁사회는 남과 비교할 수 있는 것만 가치로 인정합니다.
디지털 시대는 이를 가속화시켜서 SNS는 24시간 "보여주기" 경쟁을 만들고,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시각 정보만 노출시키며,
즉석 만족 문화는 기다림과 인내의 능력을 상실시킵니다.
다섯째, 영적 시각의 퇴화입니다.
에베소서 1장 18절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적 시각 상실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영적 감각이 둔화되고,
기도와 말씀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관점을 상실하며,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면 물질적 시각만 발달하고,
믿음이 약화되면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이런 원인들로 인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첫째, 즉각적 만족 추구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중하며, 인내와 성숙의 기회를 상실합니다.
둘째, 비교 강박입니다.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자신의 고유함을 상실하며, 감사보다 불만이 앞섭니다.
셋째, 외적 검증 의존입니다.
남들의 인정에 목마르고, 자존감이 외부 평가에 좌우되며, 진정한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겪습니다.
넷째, 불안과 조급함입니다.
미래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며, 믿음보다 염려가 앞섭니다.
특히 우리 청년 세대는 더욱 심각합니다.
SNS의 영향으로 남들의 "보여지는" 삶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좋아요, 팔로워 수 같은 "보이는" 지표에 집착하며,
진짜 자신보다 "보여지는" 자신에 더 신경 씁니다.
취업 시장의 압박으로 스펙, 학벌 같은 "보이는" 조건에만 매달리고,
진정한 소명이나 적성은 뒷전이며, 당장 "보이는" 결과에만 일희일비합니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문제가 영원할 것처럼 절망하고, 보이는 성공이 진짜 성공인 줄 알며,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관점으로 보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역대상 15장 28절을 보면
"온 이스라엘은 환호성을 올리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고, 심벌즈를 우렁차게 치고, 거문고와 수금을 타면서, 주님의 언약궤를 메고 올라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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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인데 완전히 다른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어려움은 성장의 기회이고,
실패는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며,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다윗을 생각해보세요.
인간적으로 보면 목동 출신의 막내아들이고,
골리앗 앞에서는 무력한 소년이며,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고, 믿음의 용사이며,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입니다.
13절에서
"지난번에는 여러분이 메지 않았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규례대로 하지 않았기 그렇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실패를 통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나님의 시선은 인간의 시선과 어떻게 다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시선입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져도, 우리가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통해 보십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우리의 실패나 부족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움을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시선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계십니다.
첫째, 시간의 관점이 다릅니다.
인간은 현재의 문제에 매몰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관점에서 보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현재 어려움도 영원한 계획의 한 부분입니다.
둘째, 목적의 관점이 다릅니다.
인간은 편안함과 성공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과 성화를 목적으로 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가치의 관점이 다릅니다.
인간은 외적인 것을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내적인 것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 능력의 관점이 다릅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절망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삶을 다시 해석해보면 어떨까요?
취업과 진로 문제를 보면, 인간적으로는 경쟁과 불안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과정입니다.
전도서 3장 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상처와 실망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는 서로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기회입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에서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부족함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믿음의 훈련장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선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첫째, 진정한 예배가 회복됩니다.
"온 이스라엘은 환호성을 올리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고, 심벌즈를 우렁차게 치고, 거문고와 수금을 타면서, 주님의 언약궤를 메고 올라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예배의 중심에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신약시대인 지금,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주시는 다리이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십니다.
진정한 예배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찬양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에 감격하여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공동체가 회복됩니다.
각자의 은사를 발휘하며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사명이 회복됩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 시대에, 이 자리에 있는지를 깨닫게 되죠.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 감사가 회복됩니다.
부족한 것보다 주신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소망이 회복됩니다.
현재의 어려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삶을
마지막으로 미갈의 이야기를 생각해봅시다.
"두 번째 시선: 다윗을 바라보는 미갈의 시선"이라는 부분에서
미갈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왕의 체면에 맞지 않는다"며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낮아질 것이다."
다윗은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시선으로 살 것인가요?
복음 안에서의 시선 전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보이는 것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주십니다.
에베소서 1장 18절에서 바울이 기도한 것처럼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죽음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현재의 어려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선 전환의 실제적 시작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서 한 가지만 해보세요.
잠자리에 들기 전 5분만이라도 "오늘 하나님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오늘 겪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되, 이번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세요.
그 짜증났던 교통체증도, 그 힘들었던 과제도, 그 어색했던 인간관계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해보세요.
일상 속 시선 훈련
그리고 앞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즉각적인 감정 반응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연습을 해보세요.
먼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부터 시작해봅시다.
누군가 나에게 짜증스러운 행동을 했을 때, 바로 화를 내기보다는 "저 사람은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어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보세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기적이다”, “게으르다"고 판단하기보다는 "혹시 몸이 아픈 건 아닐까?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까칠한 선배를 만났을 때도
"성격이 나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무슨 스트레스가 있으신 걸까? 어떤 압박을 받고 계신 걸까?"를 생각해보세요.
친구가 약속을 자주 취소할 때도
"나를 무시한다"고 서운해하기보다는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는 건 아닐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사정과 상황을 다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나의 사정과 한계를 아시고, 나의 노력과 마음을 보시며,
나를 향한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죠.
시선 전환이 가져오는 놀라운 유익
그런데 이런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게 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감사가 넘쳐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작은 친절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저 분도 힘드실 텐데 나에게 웃어주셨구나", "바쁘실 텐데 나를 도와주셨구나"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내 상황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불평하던 것들이 감사제목으로 바뀝니다.
"취업이 안 돼서 힘들다"에서 "하나님이 더 좋은 때를 준비하고 계시는구나"로,
"인간관계가 어렵다"에서 "나를 성숙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이구나"로,
"경제적으로 어렵다"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할 기회구나"로 바뀌는 것입니다.
심지어 과거의 아픈 기억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구나"라는 감사가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말씀하신 "범사에 감사하라"의 비밀입니다.
모든 일이 다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모든 일을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선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뇌과학자들이 말하듯이, 반복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면 뇌의 신경 회로가 실제로 바뀝니다.
판단하는 뇌에서 이해하는 뇌로,
정죄하는 뇌에서 공감하는 뇌로,
불평하는 뇌에서 감사하는 뇌로 바뀌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변화
또한 우리가 함께 모인 이 공동체 안에서부터 시작해봅시다.
남과 비교하며 위축되기보다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와 역할을 발견하고 격려해주세요.
여러분 옆에 앉은 분을 한번 보세요. 그분도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가운데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지혜
그리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SNS 사용도 의식적으로 바꿔보세요.
남과 비교하게 만드는 콘텐츠를 보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이것이 나에게 하나님의 관점을 주고 있는가?"를 물어보세요.
대신 영감을 주고 격려가 되는 콘텐츠를 선택해서 보세요.
말씀과 기도의 회복
무엇보다 하루 15분이라도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관점을 배우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이것이 영적 시각을 기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변화의 약속
오늘 우리가 나눈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즉각적이고 표면적이며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는 창조 목적의 왜곡,
생존 본능의 과잉 작동,
죄의 본질,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
영적 시각의 퇴화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영원한 관점에서,
성숙과 성화의 목적으로, 내적 가치를 중시하며, 무한한 능력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특히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사랑과 은혜의 대상으로 보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시선으로 살 때 예배, 공동체, 사명, 감사, 소망이 회복됩니다.
시선이 바뀌면 뇌가 바뀌고, 뇌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며,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새로운 시작의 선언
오늘부터 우리의 시선을 바꿔봅시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현재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으로,
인간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시선을 전환합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시선이 바뀔 때, 여러분을 통해 이 세상도 바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4장 18절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만 매몰되어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즉각적인 것, 표면적인 것, 감정적인 것에만 반응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놓쳤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이해해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시선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시선을 바꿔주세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현재의 문제보다 영원한 소망을,
인간의 기준보다 하나님의 기준을 보게 해주세요.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해주세요.
특별히 청년들에게 지혜를 주세요.
SNS와 경쟁 사회 속에서 남과 비교하며 절망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계획과 은사를 발견하게 해주세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들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세요.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판단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정죄하기보다는 격려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세요.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눈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이 세상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며, 복음의 소망으로 섬기는 청년들이 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부족한 것보다 주신 것을 보고,
문제보다 은혜를 보며, 절망보다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성령님,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영적 눈을 계속 밝혀주시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 그래서 새로운 시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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