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119
"내 생명은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만, 내가 주님의 법을 잊지는 않습니다." (시편 119:109)
멀어진 관계, 다시 찾는 사랑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너 먼저 끊어~", "아니, 너 먼저~" 하며 결국 배터리가 방전되기도 합니다. 데이트가 끝나고 "잘 들어가~", "응, 너도 조심히 들어가~" 인사를 하고도 골목 끝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30분째 작별 인사를 나누는 연인들.
이성적으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고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마저도 기쁨이 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 (97절)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성경 말씀이 요즘 잘 안 들린다"라고 느끼지는 않으신가요?
우리는 때로 교회 안의 말씀이 삶과 너무 멀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데 멀어지는 이유
연인 관계가 소원해지듯, 말씀과의 관계도 때로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소통의 일방향성
데이트 중에 한 사람만 계속 이야기하고, 상대방은 듣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말씀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우리는 말씀을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고, 응답하지 않습니다. 질문하고, 묵상하고, 대화하듯 말씀을 읽는 습관이 부족합니다.
2. 일상의 분주함과 피로
바쁜 일상에 지친 연인들은 점점 만남의 시간을 줄이게 됩니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분주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는 정보와 일에 시달립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여유와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3.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
'신실한 신앙인은 축복받는다'는 단순한 메시지와 복잡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경험합니다.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한 것 같은 경험, 말씀대로 살았는데 오히려 더 어려워진 상황들... 이런 경험이 말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킵니다.
4. 습관과 매너리즘
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같은 구절만 반복하고, 새로운 통찰 없이 형식적으로 말씀 시간을 갖는 것은 관계를 메마르게 합니다.
사랑은 묵상이 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온종일 묵상한다"고 말하죠(97절). 단순히 성경 몇 장을 읽는 게 아니라, 삶과 말씀을 연결하며 곱씹는 겁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생각나요. 말 한 마디, 눈빛 하나, 어색한 웃음도 계속 떠오릅니다.
시편 기자에게 말씀은 그런 존재입니다.
이 말씀 묵상의 결과로 시편 기자는 세 가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 원수보다 더 지혜롭게 됩니다. (98절)
- 스승과 노인보다 더 슬기로워집니다. (99-100절)
-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101절)
이는 단순히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그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 분별력이 그의 삶을 바꿉니다.
말씀은 방향이 된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105절)
제주 해녀들에게는 '테왁'이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이 둥근 부표는 해녀가 깊은 바다에서 숨을 고를 때 의지하는 생명줄입니다.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 해녀들은 이 테왁을 붙들고 안전하게 호흡을 유지합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의 테왁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내 판단은 늘 흔들리지만, 말씀은 흔들림 없는 기준과 빛이 되어 우리의 길을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씀을 등불로 삼았다면,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우리 삶의 빛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살아 있는 말씀
"내 생명은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만, 내가 주님의 법을 잊지는 않습니다." (109절)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결단합니다.
"내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주님의 율례를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12절)
예수님도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고난 중에도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말씀의 깊이와 달콤함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과 다시 연결되는 방법
- 작게 시작하세요: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좋습니다. 시편 한 편, 복음서의 한 단락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세요: 성경 앱의 오디오 기능을 활용해 출퇴근 시간에 말씀을 들어보세요.
- 말씀 묵상 노트를 만드세요: 읽은 말씀 중 한 구절을 적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기도를 기록해보세요.
- 다양한 형태의 말씀 공동체를 찾아보세요: 온라인 성경 스터디 그룹, 카페에서 만나는 소규모 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찾아보세요.
- 말씀을 일상에 적용해보세요: 오늘 읽은 말씀을 하루 동안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한 가지만 생각해보세요.
말씀의 기쁨을 회복하는 경험
말씀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어떤 기쁨이 찾아올까요?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은 마치 오랫동안 흑백으로만 보던 세상이 갑자기 컬러로 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같은 풍경인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어요. 같은 상황인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내 안에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말씀의 기쁨을 회복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연결되는 것과 같은 감정적, 영적 경험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시작할지 모르지만, 꾸준히 말씀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119"입니다. 위급 상황에 누르는 119처럼, 내 영혼이 타들어갈 때 반드시 불러야 할 고백입니다. 지금부터 다시 한번 성경을 펴보세요.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담아보세요. 암송해보세요. 메모해보세요. 반응이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말씀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당신을 다시 살릴 것입니다.
이 글은 시편 119:97-112을 본문으로 한 설교 '내 영혼의 119'의 요약입니다.
말씀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유를 진단하고, 말씀 사랑의 회복을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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